※이 글은 칼럼을 쓰기 위해 작성한 미완성 글이다. 단순히 나의 감정과 생각을 옮겨 놓고자 작성한 글이기에 문맥과 문장이 매끄럽지 않거나 논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인정해주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지 않음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정말 회의감이 든다. 더구나, 그 가치를 인정해주고 독려해주게끔 해야하는 역할과 책임을 가지고 있는 곳의 리더, 담당자 역시도 그 가치에 대한 부분을 철저히 짖밟고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각자가 모든 것을 스스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 간에 사업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시스템에서 과연 어떤 사업의 기회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바로 '필요한 것이 없는 고객(이해관계자)'이다.) 그러나, 사업가의 입장에서 다행스럽게도 어떤 분야에서건 현대사회에서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조직과 시스템은 거의 대부분 없다. 결국, 다른 이들과 협업을 통해서 가치가 창출되고 그로부터 이윤이 생겨 생존과 발전을 이루어 나가는 것인데, 그것은 다른 이들의 가치창출 활동에 대해 정확하게 인정을 해주어야만 그 관계가 지속되고 오랫동안 함께 일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상대방의 사업이나 제품에 대해 그 가치를 정확하게 인정해주지 않는다. 가장 흔한 예를 들자면, 불법 다운로드 / Copyright 도용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우리는 누군가가 땀 흘려 만들어놓은 것을 훔쳐 쓰고 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컨설팅과 같은 무형의 서비스 산업이다. 컨설팅에 대해 가치있다고 생각한다면 컨설팅 수혜자는 그에 대한 댓가를 컨설턴트에게 지불할 것이다. 멘토링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노하우와 경험을 밥과 술까지 얻어먹어가며 얻을 수 있다. 그것이 상호간에 원하는 것이라면 상관없지만, 사업적 관계에서의 것이라면 서로 원하는 것을 얻거나 만족감을 줄 수 없다면 그 관계는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서비스의 수혜자는 실제로 그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 국가나 다른 기관에서 이를 대신 지불해주는 구조다. 상대방이 노력하고 투자한 부분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 문화권에서는 수혜자의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온다. 여기서, 자신이 직접 모든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그것은 그 일에 대한 가치를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문화는 경제적으로도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다. 선진국에서 정말 다양한 직업군이 있다는 것은 그들이 제공하는 제화와 용역에 대해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그에 대한 보상(금전/정서 등)을 받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직업 수가 선진국에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를 추적하다보면, 결국 그들이 노력한 것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는 문화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가치 인정에 대한 사회적 의식이 낮은 상황일 때, 사업가나 영업맨들은 '도와달라 / 상황을 좀 봐달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게 너무 싫다. 왜 열심히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놓고 구매자에게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 것이 아닌, 구매자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딱한 사정을 봐달라고 '가치를 구걸'을 해야하는가! 상대방도 분명히 그것에 대한 정서적 가치는 인정을 하면서도, 결론적으로 보상적(물질적) 가치 인정에서는 전혀 다른 행동을 매번 되풀이하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유쾌하지가 않다.
가치를 인정하는 척!만하는 그들은 '정서적 가치 인정자'
가치 인정을 구걸하는 그들은 '가치 구걸자'
이 두가지 만큼은 사업을 하면서 되지 않아야 한다.
단순히 갑을관계라는 역학적 구조만으로 그들이 힘을 마음대로 사용한다면 세상이 어찌 올바른 사회가 될 것인가? 칼레의 시민처럼 가진 자는 가진 자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성숙한 사회일 것이다. 그것은 분명 상대방의 도움과 노력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감사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에 기반한다.
'근사한 얼굴은 함께! 만들어 가자'고 외치고 있지만,
'빳빳한 결재서류는 나만! 먹고 살겠다'에 싸인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잠재 가능성을 인정해주고 독려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부모의 역할을 하는 창업과 관련된 조직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 교육을 통해 올바른 창업가를 양성하고 창업의 활성화와 건전한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사람들은 반드시 다른 사람들의 노력을 인정해주고 정확하게 보상을 해주는 실천적 가치 인정자가 되어야 한다. 이를 구현하려면, 의무와 책임이 있는 창업 관련 조직 구성원들의 인식부터 혁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우선, 나부터 정서적 가치 인정자가 아닌 실천적 가치 인정자가 되어 나와 함께 일하는 이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고 보다 나은 가치를 함께 만들어 갈 것이다. 서로서로가 가치를 인정해주고 인정받아야 하는데, 사슬처럼 연결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가운데에서 하나라도 이를 부정하거나 평가절하한다면 그 구조는 쉽게 무너진다. 그래서 이 구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탄탄한 신뢰와 동반자적 관계가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형성되기 어려운 구조다.
(먼저, 정부와 유관기관의 인식개선 및 행동개선 필요 주장 추가)
(그 다음, 대중의 의식 수준 향상 도모 필요 주장 추가)
솔직히 나도 이런 주장을 펼치기에는 당당하지 않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나 자신도 회사생활 할 때 다른 업체들의 노력에 제대로 가치 인정을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에 대해 굉장히 깊이 반성하고 있다. 담당자가 나를 쳐다보며 자아냈던 그 표정이, 오늘따라 유난히 선명하게 떠오른다.
Value > Price > Cost
Value와 Price를 높이고, Cost는 최대한 낮추어 최대의 이윤을 창출하는 기존 경영학의 논리에 대해서, 나는 윤리와 도덕적으로 회의가 생긴다. 각종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원가혁신을 도모하는 것은 분명 필요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마진은 파트너로서 보장해주어야 그들과의 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이해관계자의 목을 틀어쥐고 탈탈 털어내고 또 쥐어짜는 것은 강도나 다름없는 것이 아닐까?
이 부등호(不等號)가 우리 사회의 윤리와 도덕적 관점에서 현실적으로 적합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 올바르게 구현되도록 하는 역할이 기업가정신과 창업 관련 종사자들이 선도해야 할 책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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